도서관 활용 독서교육 인격 형성에 도움 문제 학생도 크게 줄어
"선생님, 통장 다 채우면 새 통장 주시는 거예요?"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초등학교 2층 도서관. 3학년 김도훈(10)군은 대출대에서 동화책 2권을 빌린 뒤 통장정리기로 향했다. 도훈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독서 통장'. 통장에는 도훈이가 빌린 책의 제목과 빌린 날짜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개학식이 열린 2일부터 이날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도훈이가 원래 책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1학년 때만 해도 혼자 도서관에 온 적은 거의 없었다. "엄마가 대신 빌려온 책만 읽었다"고 도훈이는 말했다.
도훈이가 변한 것은 지난해 5월. 이문초가 학생들에게 독서통장을 나눠주면서 도서관은 도훈이가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독서통장에 찍히는 읽은 책 이름이 하나둘씩 불어나는 게 도훈이에게는 신기하기만 했고, 갈수록 책에 재미를 붙였다.
도훈이는 1학년 때는 "엄마가 읽으라고 하셔서" 110권을 읽었지만, 2학년 때는 스스로 도서관을 찾아 230권을 빌려다 읽었다. 도훈이는 "책을 많이 읽어 유재석 아저씨 같은 MC(방송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도훈이처럼 '독서왕'으로 변한 아이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위치한 이 학교는 2006년 증축된 건물에 새 도서관을 만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아침 10분 독서', '독서 우체국'(일주일에 한번씩 친구들에게 읽은 책을 추천하는 엽서 쓰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아이들 중 평균 25%가 방과 후 도서관에 들르게 됐다. 4년 전만 해도 하루 10명도 찾을까 말까 했던 이 학교 도서관의 지난해 하루 방문자는 450명이었다.
▲ “책 저축 이만큼 했어요.”이문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도훈이(왼쪽 아래)와 친구들이‘독서 통장’을 뽐내고 있다. 도서관에 설치된 통장정리기에 통장을 집어넣으면 대출한 책이름이 찍혀 나온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독서가 가져다 준 변화
긍정적인 변화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겼다. 문제 학생이 줄어든 것이었다. 3년 전 6학년 학생이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칼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학교 폭력이 심각했다. 그러나 책 읽기 습관이 퍼진 요즘에는 폭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올 1학기 개학 이후 한건의 주먹다짐도 없었다.
백민 교장은 "아이들이 순해진 것은 독서교육의 덕분이라고 본다"며 "예전에는 기피 학교였지만 요즘에는 들어오고 싶어하는 학교가 됐다"고 말했다.
학교도서관을 활용한 독서교육이 아이들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교육계에서는 정설로 통한다. 미국에선 모든 초·중·고교에 '독서지도사(Reading Specialist)'를 배치해 인성 발달 단계에 알맞은 책을 추천해주는 등 체계적인 독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하이오·노스캐롤라이나 같은 주(州)에서는 도서관 교육을 수학·과학과 같은 비중의 '과목'으로 취급한다.
학교 도서관 활용 교육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국가 시책으로 모든 초·중·고교에 사서(司書)교사를 배치했고, 모든 지자체가 아동 독서활동에 관한 시책을 세우고 실시하는 것을 의무로 했다.
우리나라는 시설만 겨우 갖춘 단계다. 전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 도서관 5개년 발전계획'을 추진하면서 80.4%이던 도서관 설치율을 95.1%로 높였지만, 대다수 학교에서 도서관은 '책 대여점'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학교의 도서관 교육은 아이들이 '각자 알아서' 책을 읽게 1시간 동안 내버려두는 정도이고, 독서교육은 책의 종류나 질(質)에 상관없이 '일단 많이 읽도록 한다'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아이들은 무엇을 읽을지 자기가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
도서관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도서관 전담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국 초·중·고교 1만1173곳 중 사서교사나 계약직 사서 등 도서관 전담 인력이 배치된 학교는 3분의 1(3802개교)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도서관 담당 교사는 주로 신참내기 막내 교사의 몫이다. 담임·교과 수업과 함께 도서 구입·도서관 관리·독서교육 등의 업무까지 담당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서울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시험 채점이나 학교 행사로 정신없을 때에는 구매도서 목록을 출판사에서 권해준 대로 대충 작성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강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곽철완 교수는 "선진국에서 학교 도서관은 교과·인성교육의 핵심이 되는 장소"라며 "수업에 도서관을 활용하면 아이들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libraryup.chosun.com 새 도서관을 꾸며 드립니다
조선일보와 롯데장학재단이 '시골학교에 도서관을' 캠페인을 통해 시설이 낙후하거나 도서관이 없는 초·중학교에 아담한 도서관을 꾸며 드립니다. 아이들 미래를 위해 새 도서관을 선물하고 싶은 선생님들은 캠페인 홈페이지를 방문해 신청해 주세요.
문의는 (02)776-6723, 2118-2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