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 사서교사가 필요한 이유
신 민 경｜(사)어린이도서연구회 연구실장
당연한 일들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학교 도서관 사서교사 배치도 그 가운데 하나다. 2003년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부터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읽어주기엄마모임’을 시작했다. 그 후 7년 정도 매주 화요일마다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면서 학교 도서관의 방향과 사서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사서선생님이 2003년부터 계속 근무를 해서, 사서선생님이 아예 없는 다른 학교에 견주어 여건이 좋은 편이었다. 사서선생님은 요일마다 책 읽어주는 엄마들이 오는 시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고, 도서관 책 관리와 전교생들의 대출현황 파악, 아이들 특성을 일일이 파악하였다. 또, 낡은 책이나 버렸으면 하는 책들을 따로 정리해 놓았다. 학교에서는 책 한 권 버리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계약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서선생님은 늘 ‘내년에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일을 할 때마다 능동적이지는 못했다.
사서선생님은 그때부터 9년째 이 학교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다. 사서선생님이 없거나 자주 바뀌는 학교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면 사서선생님이 오랫동안 근무한 이 학교 도서관은 어떻게 변했을까?
첫째는 양질의 도서구입이다. 도서구입비는 해마다 책정되는데, 우리 회 목록을 비롯하여 여러 목록을 살피고, 가끔은 ‘책읽어주는엄마모임’과 상의하여 좋은 책으로 구입을 하였다. 일단, 모든 전집은 구입대상에서 제외시켰고 너무 오래된 낡은 책과 전집류는 서고에서 치웠다. 또 아이들이 즐겨보는 학습만화는 도서관에서만 보도록 하고 대출은 못 하게 하였다.
둘째는 학부모 역할의 변화다. ‘책읽어주는엄마모임’은 나중에 ‘도서도우미모임’으로 바뀌었다. 도서도우미 어머니들은 도서 대출과 반납, 서고 정리 등 기존의 실무적인 일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좋은 책을 가려 뽑아 알리는 일을 맡았다. 도서도우미 어머니들은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책 이야기를 나눈다. 내 아이에게 읽어준 소감, 아이 반응,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 등을 이야기하고, 매 달 10권씩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나누어 학년별 권장도서목록을 만든다. 방학 때는 권장도서목록을 각 20권씩 정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면 학습만화를 주로 보던 아이들도 학교 도서관에 와서 목록에 있는 책들을 찾아 읽으며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다. 또, 도서도우미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모들도 아이들 책에 관심을 갖고 함께 읽기 때문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셋째는 도서관 개방시간이 늘어났다. 사서선생님이 상주하기 때문에 등교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에도 도서관을 열 수 있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며 엄마를 기다리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다음 방과 후 교실에 가기 전까지 남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은 도서관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책도 마음껏 볼 수 있는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받아들였다. 거기다 바닥을 온돌로 깔고 보일러를 놓아서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책을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보고, 뒹굴면서도 볼 수 있다. 학교 도서관이 마치 내 집처럼 편하고 자유로운 곳이 되었다. 사서선생님은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알아서 “야, 너”라고 하지 않고, “효원아!” “지호야!” 하고 이름을 불러준다.
넷째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을 상시로 열었다. 수요일 방과 후에는 영화를 보여주고, 다른 요일에는 책을 읽어주고, 방학 때는 학년별로 독서교실을 연다. 1학년들은 목요일마다 오전에 반별로 도서실에서 수업을 한다. 그러나 다른 학교에서 다 하는 ‘독서골든벨’이나 ‘독서퀴즈대회’ 같이 학습하는 독서대회는 하지 않는다. 한번은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도 독서퀴즈대회 좀 하지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서선생님이 그런 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설득하여 ‘독서시험’은 아직까지 하지 않았다.
다섯째는 도서관 운영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동네는 아파트 재건축 문제로 이주율이 높고 학생 수도 계속 줄고 있다. 2003년에는 전교생이 100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800명이 좀 못 된다. 이사를 많이 가서 도서도우미 어머니들도 자주 바뀌고, 인원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서선생님이 중심을 잡고 도서실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 운영방침이나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이 변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사서선생님이 있어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서선생님이 정규직이 아니다 보니, 직위에 대한 불안감과 차별은 여전하다. 비정규직 사서선생님은 학교 운영회의나 교사회의에 참여해도 발언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도서관 예산 책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1년 계약이다 보니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계획하거나 진행하기도 어렵다. 다른 학교 사서선생님들도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선뜻 나서거나, 학교에 적극적으로 제안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독서퀴즈대회나 독서골든벨, 독서수첩과 같은 사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로 진행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떠안는다. 책을 읽고 시험을 보니 책의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외워야 한다. 또 십진분류법 순서에 따라 한 달씩 책을 빌리게 해 책 읽기를 지겨운 일로 만들기도 한다. 이웃 학교의 사례를 든다면, 올 해 2학년들부터 이번 달에는 400번 대의 책들만 빌리고, 다음 달에는 500번 대의 책만 빌려서 기록하는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비정규직이지만 9년 동안 학교 도서관을 이끌어온 사서선생님이 있는 우리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학교 도서관 사서교사 배치 촉구를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현재 내가 사는 지역에도 정식 사서교사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작년까지는 비정규직 사서조차 없는 학교도 있었다. 그나마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사서가 있는 곳은 학교 도서관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사서 신분을 보장하고 자율권을 준다면 학교 도서관 운영은 상당한 수준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마다 사서교사를 배치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오랫동안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한 사서의 경력을 인정하고 지위를 보장하는 문제도 함께 풀어가야 한다.
학교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려가는 곳이 아니다. 그 곳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리, 옛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 소리가 들려야 한다. 아이들끼리, 혹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책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꽃처럼 활짝 피어나야 한다. 호기심을 해결하고, 탐구하며, 이야기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곳, 언제든 문이 열려있어 아이들을 반겨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 도서관은 어린이 도서관으로서의 역할, 마을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맡으며,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뿌리 내리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사서교사다. 학교 도서관 사서교사 배치는 꼭 필요하다. 지극히 당연한 애기를 너무 장황하게 했다.